아래에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번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표어에 대해서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너무 어려운 신학 용어는 배제하고(사실 저도 신학을 잘 아는 건 아니고)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해 보았습니다.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사이비종교의 선전표어가 기독교마저 오염을 시킨 사례인데, 끝까지 읽어보셔야만 왜 이런 표어가 지하철에 등장해서 민폐를 끼치게 되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표어가 등장하게 된 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문인데요.
한편으로 이 표어는 개신교의 아주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예정설(predestination)'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교리에 대한 몰이해와 지나친 복음주의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다.
1. 예정설이란?
예정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시작해서 루터를 거쳐 칼뱅 시대에 도르트교회회의를 통해 완성된 교리입니다.
예정설은 로마서 8장 29~30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을 근거로 하여 " 하느님은 영원 전부터 사람들이 신앙·사랑·공적 등을 갖든 갖지 못하든 구원할 사람과 멸망시킬 사람을 결정해놓았다."는 논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건 말건, 선행을 하건 악행을 하건 그런 것은 그 사람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으며 오로지 구원 받을 것으로 예정된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일종의 사람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이게 상당히 불합리해 보일 수 있는데요, 그게 바로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정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주창된 교리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당연히 인간은 선행을 행하고 죄가 없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인간의 선함과 죄가 없음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느냐는 겁니다. 결국은 그 기준은 당연히 교회 권력, 즉 성직자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그럼 성직자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준이 과연 절대선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쉽게 말해 성직자가 죄를 사하고 싶다면 면죄부를 사라고 한다면 면죄부를 돈 주고 사는 것이 선이 되는 것이며, 성직자가 마녀사냥을 하라고 시키면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는 것이 선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이런 짓을 해서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논란이 생기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교회에 복종하며 오로지 교회 권력을 위해서만 힘을 쏟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설에 의하면 하나님은 구원할 사람을 천지창조 이전부터 이미 결정해놓았으니 예정되지 못한 인간은 아무리 면죄부를 사고 교회가 시키는 선한 일을 충실히 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성직자에 의한 선악의 판단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인간을 교회 권력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논리인 겁니다.
그럼 대체 신은 왜 예정된 사람과 예정되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놓았느냐고요? 그런 거 따지면 곤란합니다. 인간의 기준과 신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고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정한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문제도 예정설로 해결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이전부터 구원하지 않기로 했던 예정되지 않은 피조물들인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럼 대체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또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절대유일신입니다. 그리고 절대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정해놓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지 않은 사람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인냥 거짓부림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곁을 떠나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모두 선하고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정된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아래에서 한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형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오지 않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은 집을 떠났던 예정된 형제가 되돌아온 것입니다. 앞서 말했든 신은 절대선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이미 예정된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치 선민사상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건 선민사상과는 정 반대의 개념입니다. 왜냐면 그가 어떤 사람이건 예정된 사람이었다면 결국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 형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백인이건 흑인이건, 도둑이건 살인마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이런 예정설을 선민사상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개신교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해 한 형제가 될 사람들은 모두 천국에 갈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거나 겉으로만 예수를 영접하는 척 하는 거짓된 사람들은 모두 예정되지 않은 사탄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지옥으로 갑니다. 이런 예정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책이 모 교회 목사가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한 바로 그 '생명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그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구절인데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예정해 놓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은 그러한 예정의 일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 이후의 시대의 예정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천국에 갈 예정된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가도록 예정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선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면 교회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을 필요가 없이 그냥 자기 본업에 충실하고 가족에 충실하면 됩니다. 왜냐면 구원 받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사실이고, 자신이 예정되었는지 아닌지는 하나님의 뜻이라 알 수 없지만 절대선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고 이미 구원을 받도록 예정이 된 것입니다.
2. 아르미니우스주의
이러한 칼뱅의 예정설을 '이중예정설(double predestin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중예정설은 그 탄생 배경이나 해석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분명히 지나치게 운명주의적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이르러서 네덜란드의 신학자인 야콥스 아르미니우스에 의해서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anism)'가 생겨납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심판날에 있을 하느님의 선택과 영벌은 신앙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결정된다.
② 속죄는 본래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③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하느님의 뜻에 응답할 수 없다.
④ 은총은 거부할 수 있다.
⑤ 신자들은 죄를 거부할 수 있으나 은총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본따 만든 가장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는데요. 나폴레옹 시대를 전후해서 전 유럽으로 확산되던 자유주의에 강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장로교(캉뱅파)와 한 뿌리에서 나왔던 침례교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장로교 내부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감리교가 태어나고, 그것이 미국으로 넘어가 유니테리언주의를 탄생시킵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가 프로테스탄트의 주류파 중 하나가 되면서 아르미니우스파 기독교와 함께 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가 갖는 이중예정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구원 받을 사람을 모두 예정해놓았지만 그것은 모든 인류에 해당합니다.(다시 말해 누구든지 다 구원할 생각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인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예정된 백성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인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도 죄를 짓고 하나님의 은총에서 멀어지면 생명책에서 지워져 예정되지 않은 사탄의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보편주의적인 구원을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중예정설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제약하는 교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장로교보다 자유의지를 강조한 감리교가 더 보수적이고, 이보다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순복음교회가 훨씬 더 보수적이 되는 겁니다. 예정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어느 쪽이건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중예정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수를 믿어도 예정되지 않았다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정된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예수를 믿게 되어 있으니 지하철에 나가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시간에 자기 본업에 충실하고 가족에게 충실하는 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따르는 겁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건 구원을 받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결국 합리적으로 결정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신앙을 가져야 하고, 신자들은 회계해서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서도 멀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다고 무조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 것이죠.(물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건 아르미니우스 교리 상에서는 분명하지만요.)
그러니 요한복음 3장 16절은 단순히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구원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된 역사 중에 하나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하철과 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피켓을 들고 민폐를 끼치고 있는 분들은 뭔가 엄청 오해하고 있는 분들인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정되어 있어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이거나, 혹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지 인간에 의해서 강요되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겁니다.
3. 천국에도 전관예우가 있다고?
그럼 이 분들이 왜 저렇게 민폐를 끼치면서 열성적으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느냐는 건데요. 이것은 많은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설교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늘에는 상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서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도 다 똑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죠. 천국에는 가되 자신이 살아 있을 때 했던 행동들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그 정도에 따라서 하늘나라(천국)에서의 대우가 달라지는 겁니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 자가 더 큰 상급을 받고, 지은 죄가 많으면 구원을 받아도 그 죄가 낱낱이 밝혀져 부끄러움을 당하고 형편 없는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실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긴 한데요. 그 하늘나라의 상급이 경제적인 차이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지는 인간의 지성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는 분명히 대우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믿음과 신앙생활의 차이에 있을 것처럼 짐작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상급에 대한 해석에 있는데요. 한국 교회는 이 하늘나라의 상급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강조를 합니다. 그 정도가 좀 심한 수준을 넘어서 거의 이단적인 논리에 가까울 정도입니다.(물론 그 밑바탕에는 신도의 대다수가 50세 이상으로 고령화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20~30대 젊은이에게 이러한 상급의 차이를 강조하는 설교 방법은 잘 통하지 않기 마련이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천국의 상급은 일종의 마일리지 제도와 비슷해서 신앙생활에 따라서 마일리지가 쌓인다.
- 살아 있을 때의 신앙 생활에 따라서 천국에 집을 지어주는데, 그 집에 쓰이는 벽돌은 예배를 참석할 때마다 1개씩 만들어주고, 십일조를 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집을 지어주신다.
- 전도를 하면 하늘나라에 XXX달란트(돈의 단위)를 저금해주고, 단식기도를 며칠 하면 XXX달란트를 저금해준다.
... 뭐 이런 식인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설교를 할 때 저런 이야기를 거침 없이 하는 목사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이것은 엄염한 사교적 행위입니다. 성경에는 저런 세속적인 묘사는 없습니다.
문제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나이드신 분들에게 이런 식의 설교가 아주 잘 먹히고, 이 분들이 여기에 강하게 심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하늘나라 상급이 전도한 사람 숫자로 결정된다고 하니 이건 아주 큰일 난 게 아닙니까! 죽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해야 전관예우를 제대로 해줄테니까요.
- 중략 -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이르기를,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제자는 참 제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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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참고로,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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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없애라고 하더니만,
흠.. 댓글을 다 지웠군요.
굳이 안지워도 괜찮은데.. ㅋㅋㅋ
넘 어렵군.. 먼 말인지 하나도 몰겠어.. ㅡ,.ㅡ)a
헛... 전공하신 양반께서 그런 말쌈을 해주시다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위의 내용은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간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쿄쿄쿄...
전혀 맞지않는 논리요 편한대로 둘러 붙이기 좋응 해석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모두 잘못되었거나, 이단이거나, 성경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윗 글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기위해 퍼온 글입니다. 기독교는 유일신을 섬기는 배타적인 종교지요. 하지만, 이단이 많은 종교도 기독교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의 의견도 읽어볼만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좀 여시고 뒤돌아보는 글이라 여겨주세요.